[어도펫] 지자체 보호소 정상화 시키기 2 : 한국 근현대 시골의 반려문화 이해해보기

네임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늘 배우고, 영감을 얻고 있는 분들 중 한 분이 바로 라지독스 선생님입니다.
예전부터 유기견 관련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 오신 분이기에, 이번에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정말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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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반려문화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우리의 반려문화, 동물권문화 역시 극한으로 치닫는 경향이 큰것 같다
동물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 사람을 위하는 방향인 경우도 많고, 오히려 동물이 싫어하는 행위는 하고, 동물에게 꼭 필요한 행위는 하지 않는 경우를 빈번하게 목격하게 된다
현재의 과도기적인 반려동물 문화로 인해 비반려인과의 간극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반 시골출신 82년 개띠의 내가 본 시각에서의 동물문화의 변천사도 적어보려고 한다.
격동의 80년대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가 태어난 80년대는 물가 풀밭에는 누런 황소들이 줄에 매여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송아지들은 어미소 옆에서 뛰놀며 풀뜯기를 같이 했다
민가 근처에 축사도 많았으며,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동네 축사에 부탁해서 어린 암퇘지 한마리를 데려다가 직접 도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황소도 사다가 잡기도 했다
하물며 개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자란 동네는 경기도권이지만, 보신탕을 육개장 먹듯이 먹기도 했다. 어린 나는 동네 잔치에 나오는 개육개장이 그냥 소고기 뭇국과 같은 선상으로 느꼈던것 같다. 동네사람들 다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니까 그냥 돼지고기처럼 먹는건가보다 했던거 같다. 토끼탕, 뱀탕, 산비둘기도 먹던 시절이니까..
다만 울 엄마가 못먹게 했던 기억이 있을 뿐..
우리집에도 내가 국민학교 3학년쯤인가? 마당에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첫 강아지는 짜장주둥이의 재구 이쁜이, 귀가 쳐진 암컷이었다.
담이 없는 마당에 있던 이쁜이는 매년 새끼를 낳았고, 이쁜이가 순하고 집을 잘 지키니 동네 어른들이 새끼를 낳자마자 데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개들을 키우다가 학교다녀오면 몇마리가 없고 없고 없어지다가 어느 날은 아이만 남기고 이쁜이도 없어졌다.
상큰아버지께서 위중하시다가 겨우 의식이 돌아왔던 적이 있는데, 의사가 개소주를 먹여보라 했다더라. 아부지 형제중에 큰아버지 병원에서 가까운(서울-경기남부) 개키우는 우리집이 당첨..되었다
대학병원 의사도 개를 먹으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이 살고봐야하니까 우리집에서 키우던 아이들이 개소주가 되어 큰댁으로 전해졌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 덕에 큰아버지께서 잘 회복 하실수 있었다고 하셨다.
한 때 우리집 마당에는 이쁜이의 자손들이 많아졌었는데 그 즈음 거의 없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울 엄마는 이후로 개를 안키우셨다. 나중에 들으니 애들 보낼때마다 심장이 떨리시더란다. 애들 보내고 싶어 보냈던게 아니라서 당시 시부모가 말하면 따라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더라.
나는 그때를 기억하길, 내가 아무리 예뻐한들 어른들 결정 한 번이면 우리강아지가 밥상에도 오르는구나를 알게된 후 충격에 빠졌던거 같다. 그때부터 보신탕이 안좋게 보였다. 그래도 그덕인지 지금 개를 구조해서 보낼때 아쉬움보다 좋은 가족 만나 다행이다 싶고, 빨리 잊고 다른 아이를 구조할 계획을 세운다. 세상 울보였던 내가 잔정이 없이 무뎌졌다.
한참을 개가 없던 우리집은 내가 대학 들어갈 무렵, 니키라는 백구가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이 녀석은 내가 없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동생을 위한 선물(?)로 온녀석이어서 소유권은 동생에게 있었으나, 10살쯤 부터는 내가 번 돈으로 보내준 사료를 먹고 마당에서 18년을 장수하고 지금은 우리집 마당 한켠에 묻혀있다.
니키가 가던날 울 아부지께서 많이 우셨다고 엄마가 전해주셨다.
내 본가의 마지막 강아지였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 격차가 커지고 있었다.
내가 굳이 위 이야기를 쓴 이유는, 같은 시기에 살았어도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도시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동갑내기 여고동창생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경험한 내용들은 현실에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었다.
세기말이던 당시 도시지역 친구들은 이미 '반려' 문화를 접한지 오래됐는데, 우리동네는 아직 개식용을 할 정도로 서로 문화가 달라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지나간 일이 몇백년 전의 일이 아니고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40여년간 뒤바뀐 일이다.
중학교 시절전까지 아무나 누구나 어디에서나 도축을 해도 불법이 아니었다.
나도 소를 도축하는 장면(망치...)을 우연히 본적이 있고,
우리집 잔치에 옆집에서 데려온 돼지를 잡는 것도 본적이 있다.
발골을 할때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이후엔 동네에서도 본적이 없다
축사들도 민가가 아닌 한적한 곳으로 많이 이사하고, 소들도 어느순간부터는 더이상 냇가에서 풀을 뜯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식육동물들의 도축에 대한 단속이 심해졌고, 생산이력제가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이표가 필수가됨)
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쯤이 맞을거다. 아마 어른들끼리 이제는 산 돼지를 사다가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얼핏 옆에서 들었던것 같다.
이후 소와 돼지는 생산이력추적을 위한 이표가 있어서 어느 농가에서 출산해서 어디서 도축한지가 모두 남도록 바뀌었고, 아무데서나 도축을 하면 불법이고 벌금도 물고 처벌도 받는다는 뉴스와 함께 동네에서 무언갈 잡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지금은 소, 돼지의 경우 지금은 허가받은 도축장에서만 도축이 가능하다.
개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못하다보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것같다.
아직도 불법도축, 불법사육이 판을 치니까...
다 변했는데, 유일하게 등교하면서도 보게되는 힘든 광경이 개를 잡는 것을 보게되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두 가지를 말하라면 성인 남자 손바닥보다 조금 큰 강아지(였던걸로 기억한다)를 큰길옆 샛길에서 나무에 매다는 장면과, 커다란 백구를 학교옆 다리 아래에서 매달아 놓고 때리던 모습이다.
너무 싫었지만, 자주 있던 일이라 어디에 말 할 수도 없이 넘어가는 시기였다.
개들은 그 이후에도 3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몇마리일지도 모르는 숫자가 비 윤리적인 방법으로 도축되고 있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이제 음지로 파고들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 우리가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이제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공공연하게 개를 잡아 먹는 것이 당연시 되는 곳들이 많다.
시골도 이해를 좀 해보자
우리는 시골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생각해보고 욕하는 걸까?
이것도 도시사람들의 시골 혐오증 아닐까?
시골사람이 도시사람 욕하는건 별로 본적이 없는거 같은데.. 도시깍쟁이 정도?
도시에서는 미개인 보듯이 하는 시각이 짜증난다.
온라인을 보면 시골 노인내들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
그들은 알까? 그들이 먹는 거의 대부분이 시골에서 자기들이 욕하는 그 노인내들이 만들어내는 생산품이라는걸
그들이 사오는 가격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금액을 받는다는 걸...
그것보다 훨씬 비싼 단가의 개사료도 있고 개 유모차도 있다는걸 알고나서 얼마나 격세지감을 느꼈을까 싶다.
도시에 유기견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면 벌써 시끄러울까 민원을 한다. 이기적이게도.. 가축시설들도 시골로 모두 이전한지가 오래 되었다.
도시의 쓰레기들 마저 시골로 보낸다. 우리동네도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만든 쓰레기 소각장을 만드는 일로 시끄럽다.
시골의 일에는 알아서 하겠지 눈을 감으면서 본인들 손해는 보기 싫어서 혐오시설을 시외지역, 시골지역으로 보내려 한다. 사람이 적게 산다는 이유로...
시골.. 여기도 사람이 산다.
도시는 시골에서 보면 매우 이기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어른들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요즘 제철인 복숭아와 이제 시작인 사과에 탄저병약부터 약을 치고, 예초기를 돌리고, 수확을 하고 택배기사 오기전까지 포장을 하고 가장 뜨거울때 살짝 오침을 하신다. 그리고 해가 넘어갈 무렵이 되면 오전에 못한일을 마무리 한다.
잠시 오침은 새벽에 일찍일어나 못잔잠을 자는거지, 늘어져서 편하게 자는게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시골에서는 가장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간이다
썬크림을 발라도 타는 피부, 비오듯 흐르는 땀, 쉴새없이 이어지는 일들...
고봉밥을 먹어도 살은 찌지 않고, 저녁먹고 몸을 누이면 잠들기도 바쁜게 시골의 삶이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감히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다.
고되고도 너무 고되다.
그런데 고되도 돈이 별로 안된다.
대농들 돈을 많이 번다 하지만 실상 순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도시에서 필요한 동식물에 대한 생산은 시골에서 맡고 있다. 훨씬 수명도 길고, 머리도 좋은 소, 개만큼 깨끗한거 좋아하는 돼지, 밭에 풀면 잡초와 벌레를 잡아먹는 닭까지 정성스레 키워서 도축장가는 애들을 선별하는 걸 자주 하게 된다.
생명에 대해 무뎌진다. 개에 대해서도 무뎌진다.
한국전쟁후 어른들이 살기위해 하나라도 뭐라도 해야하는 엄혹한 현실을 시골은 아직도 살고 있다. 예전보다 편해졌다지만, 도시만큼 편할 수는 없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농산물의 가격은 거의 동결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살때 비싸다? 그건 유통업자들이 유통마진을 많이 봐서 그렇다.
유기견 이야기 하면서 왜 갑자기 시골살이를 이야기를 하냐고??
나는 모든 일들은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시골 어른들의 삶은 간단하게 몇줄로 적으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
시골의 삶은 팍팍하다. 나의 삶을 자녀들은 이어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식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병원 한 번 가려면 하루 한두대뿐인 버스를 시간맞춰 타고 나갔다가 시간맞춰 들어와야 한다. 거의 하루를 버려야 한다.
택시를 타면 거의 편도 3만원 정도가 나온다. 가까운 마트(편의점은 없다)가 편도 8km이다. 여기도 버스 놓치면 못간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개를 키우다가 키우기 힘들다고 시골로 보냈다.
옆집에서 새끼를 낳았다고 한마리만 가져가란다. 거절했지만, 보낼데가 없다고 가져가란다. 가끔 도움도 받고 하니 개를 안받아 줄 수가 없다. 일단 받고 보니 사료를 사러 나갈수 없고 배달도 시킬줄 모르니 그냥 밥을 남겨 먹인다.
누가 그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한적은 없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이렇게 살고 있었을뿐..
하지만 이렇게 살기 싫어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암담함이 있지 않았을까?
누군들 환하고 밝기만한 꿈한자락 안꾸어봤을까..
요즘이야 온라인이 발전하고 많은 간접경험을 하게되니까 개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서울에는 각 과목별로 동물병원이 생기고 있지만,
시골 어느 지역들은 아직도 가축병원이 전부이기도 하고, 농축산이라는게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든거에 비해 돈이 많이 안되니 반려동물의 개념을 챙길 여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거의 매일 '개와 염소'를 사는 차들이 확성기를 켜고 하루 한두대씩 지나다닌다.
나 역시 유기견을 구조하면 편도 25km 거리의 동물병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고 들어온다. 차라리 소형견이나 구조할껄 중대형견에 꼿혀서 한번에 최대 3~4마리 데리고 갈수 있는데 그마저도 순한애들이나 가능하지, 같이 못타는 애들은 3마리가 맥스다.
나는 중학교때 삐삐, 고등학교때 휴대폰과 인터넷, 대학때는 아이폰부터 각종 전자기기들을 이용하던 시대의 사람이라 그래도 그 윗대 사람들 보다는 검색도 잘하고 운전전도 할 수 있어서 시골살이가 그렇게 팍팍하지많은 않다.
하지만 여기 시골에는 30~40대는 거의 없고, 50~70대들이 주를 이루는데, 도시 어른들처럼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고 기본 기능만 사용하거나, 폴더폰을 쓰시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 문맹이신 분들도 계시고..
전화통화로만 거의 일을 보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앞집에 젊으신(60대) 어른들도 필요한게 있으면 나한테 물으실때가 있었다.
이런 시골에서 개를 도시처럼 키우는건 일단 불가능하다
도시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온 경우에는 비슷하게 키우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경우는 삶에 여유(금전적, 시간적)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지 똑같이 맨바닥에서 시작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면 개를 키울수는 있으나 부지런하게 키우기는 쉽지 않다
본인 병원도 못가는데 개 병원을 어찌 데리고 가냔 말이다. 차도 없고 실외에 키우는 개는 중대형견이라 택시도 안태워준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모르고 온라인속 사람들은 자꾸만 시골노인들이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어느 부분은 맞기도 하지만, 혐오로 이어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변할수 있을까를 생각해주면 좋겠다
개들의 생명, 중요하다 모든 생명, 소중하다
그러나 온라인을 보면 종종 동물들의 생명을 소중히 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내용이 보일때 나는 눈쌀이 찌푸려진다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반려동물 생산이력제에 내장칩 필수화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27년에 개식용종식이 공식화 되면 시골에서 암암리에 잡아먹던것도 줄어들긴 할거다. 그런데 소 돼지와 다르게 잡아서 어디에 유통하는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잡아서 먹는건 잡아내기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반려동물도 생산이력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 모견 부견을 포함한 동물등록을 하고, 판매전에 칩을 삽입해야한다.
지금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을 하면 칩을 삽입하고 칩번호를 꼭 알려줘야 하는 것으로 바뀐것만 해도 개를 버릴 확률을 줄인다고 본다. 버렸는데 누가 주우면 유기가 되거나 다시 데리고 가야되는 거다.
시골에서 무분별하게 태어나는 개들이 없도록 예전에 소 돼지를 등록한 것처럼 시골동네동네 돌아다니면서 수의사쌤들이 모두 내장칩을 하고 전산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자견이 생기지 않도록 전수 중성화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번식기마다 쏟아지듯 들어오는 자견은 줄어들거라 생각한다.
- 요즘은 많은 지자체에서 마당개중성화사업을 해주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신청을 해야만 해당되고, 현장으로 나와서 수술도 해주는거 같지만, 현장 나올때 그동네 개들을 다 해주면 안되나?
그리고 중성화는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서 시행해야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유기견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보호소에 입소하는 아이들도 줄어들거고..
모든 개들의 출생 데이터도 확보하게 되고, 근친교배등을 차단하면 품종견들의 고질병 문제도 좀 줄어들거 같다. (수의사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엉망인 합법번식장도 실태조사를 꼭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온라인에서 본 합법번식장도 보니 참.. 그런데서 만들어낸 아가들이 안아플 수가 없다.
산개, 들개들은 고양이처럼 포획해서 중성화 후 풀어주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나 가축을 사냥하기 시작한 들개들은 위험요소가 될 수 있으니 풀어주긴 어렵겠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내려오는 눈꺼풀을 물리치면서 쓰려니 내용이 막 중구난방이지만, 그냥 시골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조금 살다가 다시 시골로 와서 보는 내 눈에 보이는 시골은 이렇다.
미개하다 무시하지 말고 함께 앞으로 나갈 길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큰엄마 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나의 시골살이 에필로그
뭘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노후에 시골간다 하는데, 나는 대놓고 이야기 한다
응, 와봐, 생각처럼 녹록치 않을 꺼야
작은 아버지께서 대농이시고, 아버지도 텃밭으로 자급자족하는 집에서 태어난 나부터도 농사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 못하는데, 귀농??? 한번 해봐라 쉬운가
나는 젊은 지금 농촌에서 살고, 늙으면 수원 아주대 옆이나 원주 세브란스 옆에가서 살거야
시골에서 못받는 혜택을 도시에서는 얼마나 받고 사는지도 모르면서 시골이 좋다 편하다 하는데 진짜 듣기 싫으니, 넣어두길
나도 시골가서 살고싶다~ 농사나 지을까? 하는건 둘째 낳았을때 딸도 하나 낳아야지 하는 소리랑 동급이다.